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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 7. 25. 16:04

간디가 말한 일곱 가지 사회악

마성 스님/ 동국대 강사


인도의 수도 뉴델리에 있는 간디기념 공원묘원에는 간디가 말한 ‘일곱 가지 사회악’이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다. 이 글귀는 20세기의 성자로 추앙받고 있는 마하트마 간디(Mahatma Gandhi)가 1925년 ‘Young India’라는 잡지에 기고한 글에 나오는 내용이다. 간디가 말한 일곱 가지 사회악(Seven Social Sins)이란 원칙 없는 정치, 노동 없는 부(富), 양심 없는 쾌락, 인격 없는 교육, 도덕 없는 상업, 인간성 없는 과학, 헌신 없는 종교를 말한다.

첫째, 원칙 없는 정치(Politics without principles)가 사회악이라는 것이다. 인간 사회에서 정치가 차지하는 비중은 매우 높다. 훌륭한 사회로 가는 첫걸음은 올바른 정치에서부터 시작된다. 인간 사회에 정치가 미치는 영향은 지대하다. 그런데 우리 사회에서 가장 부패한 집단 가운데 하나가 바로 정치집단이다.

그러면 왜 이처럼 정치가 부패하게 되었는가? 원칙과 철학이 없기 때문이다. 철학 없는 정치인들이 양산되기 때문에 정치에 대한 불신이 증가하게 되는 것이다. 정치인의 말은 시시각각으로 바뀐다. 어제는 그것이 옳다고 말하고, 오늘은 그것이 잘못되었다고 말한다. 이처럼 정치인의 말은 도저히 신뢰할 수가 없다. 그래서 간디는 이 사회를 어지럽히는 것은 바로 원칙 없는 정치 때문이라고 진단한 것이다.

둘째, 노동 없는 부(Wealth without work)가 사회악이라는 것이다. 노동은 신성하다. 자신의 노력으로 벌어들인 부는 참으로 값진 것이다. 그런데 농경사회에서 산업사회로 바뀌면서 일하지 않고 불로소득을 얻는 부류가 생겨나게 되었다. 열심히 일하는 자가 잘 사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 그런데 일하지 않고도 잘 사는 사회라면 잘못된 사회임이 분명하다. 간디는 일하지 않고 불로소득을 얻고자 하는 자들 때문에 사회가 타락하게 된다고 보았다. 복권과 증권, 부동산 투자 등에 매달리는 사람들이 바로 사회악의 원인 제공자들이다. 열심히 일하고 노력하는 자가 잘 사는 사회야말로 가장 이상적인 사회라고 할 수 있다.

셋째, 양심 없는 쾌락(Pleasure without conscience)이 사회악이라는 것이다. 양심 없는 쾌락이란 가치관의 상실로 말미암아 생기는 부도덕한 행위를 말한 것이다. 요즘은 남녀노소 구분 없이 어떻게 하면 인생을 즐길 것인가에만 관심을 기울인다. 우리 사회에 진정한 의미의 순결과 정조가 사라진지는 이미 오래되었다. 불륜으로 인한 이혼과 가정 파탄은 이제 새삼스러울 것이 없을 정도로 만연해 있는 것이 사실이다. 간디가 말한 사회악의 모델이 바로 지금의 한국 사회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윤리와 도덕이 땅에 떨어진 사회는 미래의 희망이 없다. 자기 절제를 통한 도덕적 인격을 함양해야 함은 말할 나위없다.

넷째, 인격 없는 교육(Knowledge without character)이 사회악이라는 것이다. 글자 그대로 번역하면 ‘특성 없는 지식’이다. 하지만 이것은 교육에 관한 간디의 철학이다. 흔히 ‘학교와 선생은 있어도 스승은 없다’는 말이 유행하고 있다. 예전의 학교는 인격향상을 위한 교육기관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입시 위주의 지식을 전달하는 학원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교권이 무너지고 있다. 교육이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다. 인격 없는 교육이 빗어낸 병폐가 아닐 수 없다.

남을 배려할 줄 모르는 이기주의적인 사람들이 높은 지위에 오를 때 우리 사회는 점차 삭막해진다. 교육의 핵심은 인격향상에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도 자식들을 훌륭한 사회인으로 키우기보다는 남보다 뛰어난 지식인이 되기를 원하고 있다. 그렇게 길러낸 자식들은 부모의 은혜도 스승의 은혜도 모르는 배은망덕한 사람이 될 가능성이 높다. 바람직한 교육에 대해 보다 진지하게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다섯째, 도덕 없는 상업(Commerce without morality)이 사회악이라는 것이다. 원래 장사는 이윤을 남기기 위한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상업 거래에도 눈에 보이지 않는 원칙이 존재한다. 장사도 적정한 이윤을 남겨야 한다. 터무니없는 폭리를 취하는 것은 절도와 다를 바 없다. 그리고 많은 이익을 얻기 위해 매점매석하거나 거울이나 자, 혹은 제품을 속이는 것은 상도(商道)가 아니다.

이를테면 기아로 죽어가는 사람들이 속출하고 있는데도 더 비싼 값을 받기 위해 곡식을 방출하지 않는 것 등이 이에 해당될 것이다. 부당한 무역거래로 우리의 농촌이 황폐화되고 있는 것도 외국 자본에 의한 도덕 없는 상업이 성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기업의 목적은 이윤을 추구하는 데 있다. 그러나 기업이 이윤만을 추구하고 사회에 그 이익을 환원하지 않으면 그것이 곧 사회악이라는 것이다.

여섯째, 인간성 없는 과학(Science without humanity)이 사회악이라는 것이다. 과학은 인류의 보다 나은 미래를 위해 존재한다. 그런데 과학이 오히려 인류에게 해를 끼치는 방향으로 발전한다면 크나큰 죄악이 아닐 수 없다. 인간에 대한 깊은 애정 없는 과학은 인류를 파멸의 길로 몰고 갈 수도 있다. 그러므로 과학자들에게 다른 사람들보다 더욱 더 엄격한 생명에 대한 윤리가 강조되는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다. 과학의 발달로 인간까지 복제할 수 있다고 한다. 이런 것이 바로 인간성 없는 과학의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과학자는 자신이 연구하고 있는 것이 인류를 위해 유익한 것인가를 늘 자문해 보아야만 한다. 과학은 그 목적이 분명할 때 인류에게 도움이 된다. 하지만 인간을 살해하는 무기들을 개발하는 것은 사회악이 된다.

일곱째, 헌신 없는 종교(Worship without sacrifice)가 사회악이라는 것이다. 이것은 종교의 본래 의미를 강조한 것이다. 종교는 많은 사람들의 이익과 행복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다. 그런데 종교가 오히려 만인 위에 군림하거나, 종교 자체를 위해 인류의 행복을 파괴한다면 종교의 존재 이유가 없게 되는 것이다. 역사적으로 종교가 이 사회에 해악을 끼친 경우가 한두 번이 아니다. 또한 종교가 부패한 경우도 역사상 수없이 많이 되풀이 되었다. 종교가 그 본래의 사명을 망각하게 되면 그 사회는 거의 절망적이라고 할 수 있다. 맹목적인 신앙이 가져다주는 사회악을 우리는 주변에서 자주 목격할 수 있다. 간디는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는 종교, 헌신하는 종교, 봉사하는 종교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간디가 지적한 이러한 일곱 가지 사회악이 없는 사회가 바로 불교에서 말하는 이상사회일 것이다.      

(불교포커스 정법칼럼 마성단상 입력 : 2006년 07월 14일 16:54:23 / 수정 : 2006년 07월 14일 18:21:0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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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일곱가지 사회악이 없는 사회가 불교에서만 말하는 이상적인 사회는 아닐 것이다.  하지만 우리네가 살아가는 사회가 이런 사회악이 없는 곳이라면 살아가는데 좀 더 규칙적이고 예측가능해 질 것이고, 또한 자본주의의 가장 큰 모순인 빈부의 격차도 없어질 것이라고 감히 생각해 본다.

시대와 장소는 달라도, 간디의 생각이나, 혹은 마성스님의 생각이 현재를 살아가는 나의 생각과도 같다.
나 스스로 사회를 이렇게 바꿀 수는 없을지라도, 내 생각과 행동은 이러한 진리를 좇으려 노력하며 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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